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광주사범학교 2학년 재학중, 동교 3학년생 하의철(河誼喆) 등과 함께 1927년 4월, 민족차별 교육을 일삼던 일본인 교유(敎諭) 강전(江田)을 타교로 몰아내는데 주동역할을 하였다.
1928년 3월에 강달모(姜達模), 임종근(林鍾根) 등과 함께 동교 학생 간부로 선임되어 교내 항일학생운동 조직의 확대에 노력하였다.
1929년 3월 졸업을 기해 그를 비롯하여, 송동식(宋東植)·홍귀주(洪貴周) 등 동교생 14명은 당시 광주읍내 청요리집인 영빈루에 모여 졸업 후의 항일운동에 관한 방도를 협의하였다.
졸업 후 그는 교직으로 나아가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하면서 광주사범 독서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성진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1·498면
- 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기려수필 39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7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