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1913년 만주 통화현(通化縣) 강산두도구(崗山頭道溝)로 망명하였다가 1917년 유하현(柳河縣) 제2구 다화쇠(多花釗)로 이주하였다.
1920년 12월(음) 광복군사령부 참리부장 조병준(趙秉準)을 만나 동사령부에 입대하였으며, 곧이어 경상남북도 특파원으로 임명받고 배일사상이 강렬한 장정의 모집에 노력하였다.
1921년 7월(음)에는 이덕생(李德生)·이수건(李壽健) 등 2명을 도만시켰으며 안동(安東)읍내 기독교교회당에서 장로 김 모(金某)를 설득, 일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22년 10월 6일(음)에는 상주읍에 있는 교회당에서 목사 김동필(金東弼)에게 독립군 모집권유를 하기도 하였다.
동년 12월 4일 본적지에서 체포되어 압송 도중에는 성주읍내 및 왜관도선장 등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높이 외쳐 독립투사의 기개를 과시하였으며, 1923년 1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3. 1. 23 대구복심법원)
- 고등경찰요사 21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41·742·743·7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