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그는 불교전문학교에 재학중인 1944년 1월 20일에 일본군 대구 24부대에 강제 징병되었다. 이무렵 일제는 전쟁에 광분하여 소위 조선인학도 육군특별지원병제도란 명목으로 조선인 학생들을 그들의 전선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학병지원은 어디까지나 표면상 지원이었지 실제는 일제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이때 대구 24부대에 모집된 600여명의 학병은 입대한지 10여일 후 3대대 3중대 소속의 27명만 남기고 북중국(北中國)으로 떠났다. 27명 속에 잔류하게 된 그는 김이현(金而鉉)·문한우(文漢雨)·권혁조(權赫朝) 등과 함께 탈출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먼저 탄약고 폭파 및 무기탈취와 독극물에 의한 일본군의 몰살, 그리고 집단 탈출 후 국외로 나가 독립투쟁의 대열에 참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같은 무력항쟁 및 독살계획은 실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으므로 이들은 일단 집단탈출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거사일인 동년 8월 8일에 동지 6인은 하수구를 통하여 탈출에 성공한 뒤 대구 팔공산에 입산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탈출을 탐지한 일군경의 추격으로 인하여 그는 신녕(新寧) 뒷산에서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3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2월에 일군 임시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대창(大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50·851·852·8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