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전북 군산(群山)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내려 온 청년 학도인 김병수(金秉洙)가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인 이두열(李斗悅)·박연세(朴淵世)·김수영(金洙榮)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하면서부터 추진되었다.
이두열과 박연세는 같은 학교 교사인 고석주(高錫柱)와 군산시 예수교도인 김성은(金聖恩)·유희순(兪熙淳), 개정면(開井面) 예수교병원 사무원 양기준(梁基俊)·유한종(劉漢鍾)·양성도(楊成道) 등과 협의하여 3월 6일 군산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목탄상을 하고 있던 그는 김성은과 유희순으로부터 이 계획을 전해 듣고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주도자들은 3월 1일부터 4일까지 영명학교에서 수천 매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거사 전날인 3월 5일, 오전 수업이 끝날 무렵 군산경찰서에서 출동한 일경 수 명이 영명학교에 나타나서 이두열·박연세·김수영을 연행해 갔다. 일경이 운동계획을 탐지하였음을 눈치 챈 주도자들은 긴급회의를 연 끝에 지금 당장 거사를 하지 않으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즉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내로 행진하였다. 같은 기독교 계통의 여학교 학생들도 함께 나섰고, 보통학교 학생들도 동참하였다. 시위대열이 평화동(平和洞)과 영동(榮洞)을 거쳐 본정(本町, 현재 동광동) 큰 거리에 이르는 동안 군중은 5백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긴급 출동한 일경에 의해 주도자들이 체포되고 시위대는 해산하고 말았다.
이날의 시위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1919. 6. 12)
- 名籍表(大邱監獄)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525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4. 30)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499∼15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