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8년경 경기도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의 장녀인 김영규와 만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19년에는 길림(吉林)에서 군정서(軍政署) 조직에 참여하여, 군자금 조달 및 무기공급 등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21년에는 흑룡강성 오운현 배달촌(黑龍江省烏雲縣倍達村)으로 이주하여 배달학원을 설립하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동년 7월에는 재북경대한민국군정부(在北京大韓民國軍政府)에서 파견된 한봉수(韓鳳洙, 일명 : 憲)가 길림으로 오자 북만밖에 있는 그의 집에서 한·중호조단(韓·中互助團)의 지단 설치 및 단원 확보를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그후 오운현에서 육영사업을 계속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1934년 7월에 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행된 '국외에 있어서의 용의(容疑)조선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무렵까지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461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