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845
성명
한자 鄭來鵬
이명 鄭箕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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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19년 5월경 길림(吉林)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暑)를 조직하고 활동(活動)하다가 일본(日本)경신년(庚申年) 대만행(大蠻行)으로 멀리 흑룡강 오운(黑龍江烏雲)으로 이주(移住)하여 배달학원(倍達學院)설립(設立)하고 민족 교육(民族敎育)심혈(心血)을 기우리다가 일본군(日本軍)의 습격을 받아 교전(交戰) (中) 전사(戰死)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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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8년경 경기도 의병장 김하락(金河洛)의 장녀인 김영규와 만주로 건너갔다고 한다. 1919년에는 길림(吉林)에서 군정서(軍政署) 조직에 참여하여, 군자금 조달 및 무기공급 등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21년에는 흑룡강성 오운현 배달촌(黑龍江省烏雲縣倍達村)으로 이주하여 배달학원을 설립하고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군사훈련도 실시하였다. 동년 7월에는 재북경대한민국군정부(在北京大韓民國軍政府)에서 파견된 한봉수(韓鳳洙, 일명 : 憲)가 길림으로 오자 북만밖에 있는 그의 집에서 한·중호조단(韓·中互助團)의 지단 설치 및 단원 확보를 위하여 동분서주하였다.

그후 오운현에서 육영사업을 계속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1934년 7월에 총독부 경무국에서 발행된 '국외에 있어서의 용의(容疑)조선인명부'에 등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무렵까지 활동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461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27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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