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충청남도 부여(扶余) 출신이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늑결되자, 이에 결사 항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1906년 1월 28일 의병대장 민종식(閔宗植)·박윤식(朴允植) 등 4명과 같이 예산 광치(禮山 光峙)에서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5월 11일 홍주의진의 좌군관(左軍官)으로 임명받았다.
그후 서천(舒川)·비인(庇仁)을 점령하고 이어서 염포(鹽浦)에 입성하였다. 이때 왜적 13명을 총살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였다.
5월에 홍주의진이 실패한 후 잔류의진들은 재거를 계획하여 7월 17일 충남 예산에서 이남규(李南珪) 등이 중심이 되어 민종식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때 이 일이 적에게 노출되어 민종식 등 다수의 지도층 인사들이 체포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11월 11일 부여를 점령한 후 12월 전라북도 진안읍에서 왜적 9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적과 계속 접전하던 중 적에게 체포당하였으며, 1907년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유배형으로 확정되어 고군도(古窘島)에서 정배생활을 하였다.
1908년 12월 7일 해배(解配)되었으나 그후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감시 받았으므로 항일운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며, 1919년 3월 6일 부여 은산시장(恩山市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다시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316∼3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