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횡성(橫城) 사람이다.
1919년 당시 횡성군 안흥면 상안리(安興面 上安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천도교인이었다.
그는 일찍부터 일제식민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3월 1일 교주 손병희(孫秉熙) 등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서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27일 횡성장터에서 신재근(申在根) 등 천도교인 다수와 주민을 규합하여 신재근과 장도훈(張道勳)을 중심으로 미리 준비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교부받아 장터에 모인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52∼95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