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곽태현은 1939년 8월 29일 경기도 이천군 장호원(長湖院)의 제1심상소학교(第一尋常小學校)에 재학하고 있었다. 그는 박영순(朴英淳)의 집에서 ‘조선의 독립’을 지향하는 비밀결사 독수리소년단(荒鷲少年團, 아라와시소년단)을 조직하였다. 박기하(朴箕河)를 단장으로 결성된 독수리소년단은 장호원제1심상소학교 4~6학년에 재학 중이던 10여 명의 소년들이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모아 결성한 조직이다. 원래는 학교당국의 학생 근로동원을 위한 조직인 ‘아라와시소년대(黃鷲少年隊)’에 대항하기 위해 그 이면단체로 결성한 것이었다.
10대 초중반의 단원들은 직접 닭을 기르고 보리·콩 등을 경작한 수입으로 결사의 경비를 조달하였다. 매주 1~2회씩 담력 키우기, 체력과 정신력 단련, 충무공사당(忠武公祠堂) 참배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키워갔다. 1942년 2월에는 장호원 읍내 곳곳에 ‘조선독립’과 ‘민족단결’을 촉구하는 벽보를 붙였다. 항일격문을 작성하여 각지의 군수들에게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이니 조선총독부에 협조하지 말고 “조선민족의 단결로 자주독립”을 이루자는 요지의 우편물을 발송하기도 했다.
1942년 3월 초순경 단원들과 함께 장호원경찰주재소(長湖院警察駐在所)에 체포되었다. 곧바로 이천경찰서(利川警察署)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10월 ‘주범(主犯)’으로 지목된 곽태현 등 4명은 기소되었다.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여주지청(驪州支廳)으로 송치되었다. 40여 일 동안 취조와 고문을 받은 뒤 같은 해 11월 18일 기소유예(起訴猶豫)로 풀려났다. 이후 사상범보호관찰소(思想犯保護觀察所) 소속 뚝섬농장에 수용되어 노역을 당했다고 한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일제말 항일비밀결사운동(변은진, 선인, 2018) 94, 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