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75
성명
한자 郭在驥
이명 金光三, 金在萬, 郭儆, 金光三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열투쟁 포상년도 1963 훈격 독립장

관련정보


2002년 0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1. 1919. 7 독립운동하려고 중국(中國) 길림성(吉林省)으로 건너감

2. 1919. 9 상해(上海)에서 폭탄을 구매하려다가 실패

3. 1920. 6 신흥학교(新興學校)에 모여 의열단(義烈團) 조직

4. 임정(臨政)과 연락하여 총독부(總督府) 요로(要路)친일분자(親日分子) 관공서(官公署) 동척회사(東拓會社)등을 폭발(爆發)하려고 폭탄 구입 은닉(爆彈購入隱匿)

5. 밀양 폭탄사건(密陽爆彈事件) 주범(主犯)으로서 1921년 폭발물 취체벌칙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죄목으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 중 일부 감형되어, 1927년 1월 22일 출옥.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 91, 214, 439

기려수필(騎驪隨筆) p. 283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 71, 286

동아일보(東亞日報) 1920.7.30, 1921.3.5, 1921.6.22, 1926.11.11, 1927.1.23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 요로(要路) : 영향력이 있는 중요한 자리나 지위. 또는 그 자리나 지위에 있는 사람
  •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다시 귀향하여 청주 청남학교(靑南學校) 교사로 있었으며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한 비밀단체인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의 당원이 되어 80여 당원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과 시위운동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동년 7월 황상규(黃尙奎)·윤소룡(尹小龍)·김기득(金奇得) 등과 함께 만주 길림성 동녕현(東寧縣) 소수분(小綏芬)으로 건너가 이성우(李成宇)외 여러 동지와 알게 되면서 동년 11월 9일 김원봉(金元鳳)·이성우(李成宇)·강세우(姜世宇)·이종암(李鍾岩)·한봉근(韓鳳根)·한봉인(韓鳳仁)·김상윤(金相潤)·신철휴(申喆休)·배동선(裵東宣)·서상락(徐相洛) 등과 일제의 관리·밀정·관공서 등을 주살·파괴함으로써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무력으로써 독립을 쟁취하려는 강력한 비밀결사인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였다. 의열단 조직 후 제1차 거사계획은 폭탄으로써 일제의 고관을 처단하고,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경성일보사(京城日報社) 등을 파괴하여 전국의 인심을 자극하기로 결정하고 황상규(黃尙奎)는 먼저 길림(吉林)에서 폭탄의 제조방법을 배우고 그는 김기득(金奇得)과 함께 상해로 가서 폭탄구입에 힘썼으나 자금 관계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길림에 돌아왔다. 길림으로 돌아온 후 자금 조달에 노력하다가 이성우(李成宇)와 함께 다시 상해로 가서 1920년 3월 폭탄 3개와 이에 필요한 약품을 구입한 다음 동지 조현상(趙賢尙)과 운반 방법을 의논하고 임시정부 외무차장 장건상(張建相)에게 의뢰하였다. 장건상은 이것을 우편으로 안동현(安東縣) 세관에 있는 영국인 's·포인'에게 보내주었다. 그는 즉시 안동으로 와서 소포를 찾은 뒤 그곳에서 황상규(黃尙奎)·윤소룡(尹小龍)과 상의하고 동지인 이낙준(李洛俊)의 손을 거쳐 경남 밀양청년단장 김병환(金鉼煥)에게 보냈다. 그리고 서울에 잠입하여 상해임시정부로부터 보내온 폭탄 13개를 만들만한 탄피·약품·부속품 등과 미국제 권총 2정 및 탄환 100발을 받은 다음 짐짝을 만들어 서울 천보상회(天寶商會)의 손을 거쳐 운동점에서 밀양으로 부쳐 김병환의 집에 감추었다. 동년 6월 서울에서 동지들과 날마다 처소를 바꾸면서 총독부·동양척식회사·경성일보사 등을 폭파하고자 그 정황을 밀탐하던 중 이 사실을 탐지한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동지 6명과 함께 붙잡혀 경상남도 경찰부로 이송되어 극심한 취조를 받고 1920년 7월 31일 서울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21년 3월 3일 경성지방법원 영도(永島) 예심판사의 손에서 예심이 종결되고 동년 6월 7일 공판이 개정되어 이동(伊東) 재판장이 입에 웃음을 띄우며 사실을 묻자, 그도 역시 웃으며 "재작년 7월 중국 길림성으로 갔는데 갈 때의 목적은 두 가지이니 첫째는 국내에 되도록 많은 폭탄을 수입할 일과 둘째는 해외의 조국독립운동 현황을 시찰하고자 간 것인데 이와같은 취지를 정한 본래의 마음은 재작년 3월 이래로 조국독립운동을 입과 붓으로는 구할대로 구하고 원할대로 원하였으나 피로써 구한 일은 없음으로 그와같은 무기를 사용하여 피로써 구하고자 원하였는데 우리는 군함도 없고 대포도 없으며 폭발탄·육혈포밖에 구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여 독립에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날 검사는 징역 10년을 구형하였고 동년 21일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 다시 국외로 망명하여 만주·상해·노령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45년 광복으로 동년 11월 귀국하였다. 귀국후 한국 에스페란토 어학회를 운영하는 한편 교육사업에 종사하다가 1952년 1월 10일 별세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1. 6. 21 경성지방법원)
  • 고등경찰요사 97, 98, 102, 197, 198, 19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9, 10, 889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80면
  • 기려수필 281∼283, 30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8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1, 214, 215, 361, 362, 43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11, 74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1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56, 102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8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93, 95, 157, 160∼169, 393, 394, 408, 409, 660∼67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601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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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곽재기 자: 경(敬). 이명 : 김광삼(金光三), 김재만(金在萬) 충청북도 청주(淸州) 밀양폭탄사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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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폭발물취체벌칙위반 징역 8년, 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에 산입 경성지방법원 1921-06-21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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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서울현충원 서울특별시 동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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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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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기념관 의열기념관 경상남도 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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