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1910년 부친인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를 따라 노령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하였다. 부친은 이곳에서 김학만(金學萬)·김치보(金致補) 등과 함께 독립운동 기지(基地)건설 및 교민의 이농 정착을 위하여 원동농업회사(遠東農業會社)를 설립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상설(李相卨)이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하게 되자 그는 여기에 가입하여 1917년까지 활동을 계속하였다.
1914년에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한흥학교(韓興學校) 운영에 종사하였다.
1920년에는 봉천 서탑(奉天西塔)에서 임시정부 요인과의 연락 사무에 종사하였으며 1923년에는 고향 성주에 돌아와 대한독립의용단 군자금 모집 특파원인 이 호(李虎)를 도와주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1924년 7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4. 7. 24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753∼7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