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남 보성(寶城) 사람이다.
1925년 전남도립사범학교(全南道立師範學校) 강습과를 졸업한 후 미력공립보통학교(彌力公立普通學校) 교사를 지냈다.
1928년 6월 정은찬(鄭恩燦)·구오현(具五鉉) 등 8명의 동지와 함께 비밀결사 자외선(紫外線)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에 가입하여 활동을 폈다. 전남노농협의회는 1931년 12월 19일 김호선(金好善)·이우적(李友狄)·김백동(金百東)·윤승현(尹昇鉉)이 주도·조직한 사회주의 비밀결사로서 전남지역의 노동자·빈농(貧農)을 규합, 혁명적 노동조합·농민조합을 조직하고 이와는 별도로 소부르조아·학생층을 중심으로 반제국주의동맹(反帝國主義同盟)을 결성하여 이를 통일적으로 지도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는 1932년 3월 정은찬·구오현과 함께 선태섭(宣太燮)의 지도를 받아 전남노농협의회의 세포반으로 보성적색농민부(寶城赤色農民部)를 조직하였다. 보성적색농민부는 선전부·교양부·조직연락부의 부서를 두고 박기원(朴基源)을 동지로 포섭하는 등의 활동을 펴던 중 조직이 노출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4년 1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4. 11. 27 광주지방법원)
- 동아일보(1934. 10. 30, 11. 2, 11. 2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7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