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황해도 연백(延白)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이정식(李廷植)·오예제(吳禮濟)·조기복(趙基福)·조면식(趙冕植) 등과 함께 백천읍에서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창동학교(彰東學校) 교사였는데, 경성여자고등학교 학생으로 서울에서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최은희(崔恩喜)와 만나보고 고향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때 그는 최은희로부터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전해 받고, 금융조합의 등사판을 빌어다가 최은희의 집에서 격문·경고문·충고문을 등사하였다.
한편, 조면식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태극기를 만들어 두었다.
3월 30일 정오경 1천여명의 시위군중이 장터에 모이자, 그는 장터 한가운데에 절구통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독립만세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역설하고 충고문을 낭독하였다.
시위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자, 그는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시위군중은 강제 해산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일제검속 때 체포되어,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24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2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5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