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19 상해 임시정부 (上海臨時政府) 방문. 안창호 (安昌浩) , 김구 (金九) 의 지시로 김석황 (金錫璜) , 송인표 (宋寅杓) 등과 같이 1920년 3월 평양 (平壤) 에 잠입, 기홀병원 (記笏病院) 을 중심으로 결사의용단 (決死義勇團) 을 조직, 군자금모집을 개시하여 13000원을 모집하여 동년 (同年) 5월 유성삼 (劉成三) , 표영준 (表英俊) 과 같이 봉천성 (奉天省) 관전현 (寬甸縣) 독판 (督判) 에게 전달하다.
2. 1920년 5월에 폭단, 단총 등을 가지고 잠입,의용단 간부회 (義勇團幹部會) 를 개최 (開催) , 동년 (同年) 6월에 평남도청 (平南道廳) 부청 (府廳) 경찰서 (警察署) 에 투탄 (投彈) . 일본 순사부장 (日本巡査部長) 청목 (靑木) 을 사살 (射殺) 하다.
3. 1920년 9월순천 (順川) 경찰 (警察) 에 의하여 피체 (被逮) 되어 일년간 복역 하다.
4. 출감후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다재 (再) 피체 (被逮) 되어 3개월 피수 (被囚) 되고 그후도 군자금모집을 계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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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0년 5월에 폭단, 단총 등을 가지고 잠입,
3. 1920년 9월
4. 출감후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다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하고 동년 5월에는 만주(滿洲)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하였으며 동년 9월 군자금 모금지령을 받고 귀국하였다. 이어 1920년 3월 김석황(金錫璜)·송인표(宋寅杓)·여행렬(呂行列) 등과 평양 기홀병원(平壤紀笏病院)을 중심으로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하고 순천군 지부장 겸 경리를 맡아 동지들과 함께 중화(中和)·평양(平壤) 지방에서 수합한 군자금을 관전현 독판부(寬甸縣督辦府)에 헌납한 후 폭탄과 권총 10정을 가지고 잠입하여 의용단간부회(義勇團幹部會)를 개최하였다. 그후 동년 6월에는 의열단(義烈團) 간부와 합세하여 평남도청(平南道廳)과 평양시청(平壤市廳)·평양경찰서 등의 투탄사건에 관련하였으며 기림(箕林)에서 일본형사 청목(靑木)을 처단하였다. 동년 8월 말 그는 순천서(順川署)에 붙잡혔으나 가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으므로 만세시위사건만으로 예심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계속해서 활약하다가 3개월간 구금되었으며, 다시 이준용(李俊用)과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혔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3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8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4면
- 동아일보(1921.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