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남도 안주(安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23일 입석면(立石面) 장날을 이용하여 고영규(高營奎)·윤동휘(尹東彙)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3월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서울로부터 전해받은 독립선언서와 자유신보 및 경고장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3일 2천여명의 군중이 모이자, 그는 이들에게 독립선언서 등을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연설한 후, 이들과 함께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안주수비대에서 출동한 6명의 보병과 대동군(大同郡) 부산(斧山)에서 출동한 6명의 헌병·경찰에 의해 시위군중은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후 그는 일경의 일제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8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