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평남 강동(江東) 사람이다. 평양 숭실(崇實)중학교 재학중인 1936년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연행되어 구류처분을 받았다고 하며, 1938년에는 동지 김길순(金吉順)·박병조(朴炳燥) 등 6명과 함께 항일결사를 조직했다고 한다. 그후 1939년에 동경으로 유학한 후에도 그는 동지들과 계속 연락을 갖고 독립의식을 길렀으며, 또 독립투쟁의 방략을 모색하고 상해(上海)임정이나 독립군에 투신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계획의 실행이 어렵게 되자 이들은 1943년에 당시 일본군의 원동력 구실을 하던 겸이포제련소의 용광로를 폭파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러던 중 동조직의 활동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43년 11월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국내로 이송된 그는 1944년 6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