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강원도 삼척 출신이다.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이어서 단발령이 내려지자 김헌경은 강릉(江陵)·삼척(三陟)·울진(蔚珍)에서 동지를 규합하여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동지들 중에서 인망이 높았던 그는 창의대장(倡義大將)으로 추대되어 관동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6년 1월 관동의진(關東義陣)이 일본인의 거류지(居留地)이며 일인들이 경제적 진출 거점으로서 사용하던 원산(元山)항을 공격하기 위하여 연합전선을 전개하고자 꾀할 때 김헌경은 동지들을 거느리고 2월 6일 안변 승평(安邊 昇平)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의 원산 습격 계획이 이미 각국 영사관에 통보되었고, 일인들은 이에 대비하여 방어태세를 철통같이 갖추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인데도 비바람이 심하였으며, 의병들의 주무기는 화승총(火繩銃)이었다. 이것은 비바람 속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의진은 부득이 원산항을 뒤로하고 회군(回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고 끝에 세운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격이 되었지만 이들 관동의진은 '영남 열읍(嶺南列邑)에 보내는 격문'을 지어 그 동안의 원산 진격 계획의 전말을 보고하고 아울러 의병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4월 12일 관군과 일군이 관동의진을 분쇄시키고자 강릉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이때 김헌경은 밤을 새워 가면서 접전하여 많은 적군을 사상(死傷)시켰지만, 아군의 피해 역시 적지 않았다.
그 이후 꾸준히 동지를 규합하면서 항일투쟁을 직접·간접으로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계속하여 국권회복에 진력하였으나 친일 주구배(親日走狗輩)의 밀고로 체포되어 5월 5일 경성 감옥(京城監獄)에서 옥사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진주지휘남초고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224∼2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권 43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