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충청남도 청양(靑陽) 출신이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한반도 식민지화 정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을 늑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 야욕을 분쇄하고, 친일 각료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한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1906년 5월 민종식(閔宗植) 의진이 홍주(洪州)성을 점거하여 호서지방의 의병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에 이규하는 청양에서 거의하여 홍주의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일본 장교 토방(土坊)이 홍주성을 공격하여 홍주의진은 크게 패하고 80여 의사가 순국하고 80여명의 의사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규하는 전라북도 익산(益山)으로 피신하여 익산을 중심으로 의병 약 3백여 명을 다시 모집하여 활동하였다고 한다. 몇 차례 적과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으나 한 전투에서 왼손을 부상당한 후 은신하여 부상을 치료하면서 재의거를 꾀하였다.
1908년 9월 9일 남포(藍浦) 반도산(半島山)에서 다시 수십 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적과 교전하였다.
그러나 13일 남포 간치(艮峙)에서 접전 중 체포되어 공주(公州) 지방법원에서 소위 내란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1909년 7월 15일 옥중에서 "비록 내몸은 앗아갈지라도 내 마음은 뺏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홍양사(전) 81면
- 공주지방법원 형사사건부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58·359·36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