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통영(統營) 사람이다.
1927년 3월 경상남도 도평의원(道評議員) 김기정(金淇正)이 도평의회 석상에서 한국인 교육의 불필요 및 한국어의 통역철폐를 주장한 매국적 행동을 자행하였다.
이에 격분한 그는 박봉삼(朴奉杉)·박태근(朴泰根)·박중한(朴仲漢) 등과 함께 6백여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김기정 징토시민대회(懲討市民大會)를 열었다. 징토대회에서는 김기정의 친일발언 사실을 규탄하고 공동절교를 선언하며 일체의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27년 10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불복·상소하여 1928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후 1929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통영지회를 중심으로 항일활동을 폈으며 1931년 5월 16일 신간회 제2회 전체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동회의 해소를 주관하였다.
1942년 2월에는 박영근(朴英根) 등 8명의 동지와 함께 항일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붙잡혀 징역 4월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8. 5. 1 대구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5권 1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351면
- 동아일보(1927.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