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평안남도 평원(平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7일의 어파역(漁波驛)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곳은 영유읍(永柔邑)에서 약 5리 떨어진 역전촌으로, 그는 이날 오후 9시경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터널 어귀의 산모퉁이에서 횃불시위를 벌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평양(平壤)에 급히 구원요청을 하여, 헌병·경찰 6명과 10명의 보병을 지원받아 터널을 보호하는 한편, 시위군중을 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이에 굴하지 않고 야영준비를 하자, 다시 보병 10명과 헌병 6명을 증원받아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그는 결국 일경의 일제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1921년 3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4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