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24∼25년 이종율(李鍾律)·조치기(趙致基) 등과 함께 사회과학연구단체인 공학회(共學會)를 조직하였으나 동회가 일경에 의해 해산당하자 청년운동 단체인 학생구락부(學生俱樂部)·경성청년회(京城靑年會) 등에 가입하여 항일민족운동을 폈다.
1926년 학생운동기관지인 ≪학거사(學車社)≫의 남선(南鮮) 특파원으로 임명되어 각지를 순회하며 활동하였고, 동년 여름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신민부(新民府)에서 군자금 모집과 밀고자의 처단을 목적으로 요원을 파견하자 그를 도와 활동하던 중 일경의 추적을 피하여 귀향하였다.
1927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간 그는 조도전(早稻田) 대학 전문부에 입학한 후 전진한(錢鎭漢)·함상훈(咸尙勳)·이선근(李瑄根) 등과 함께 신간회(新幹會) 동경지회(東京支會)의 설립에 참가하여 정치문화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으며 1929년 서울에서 신간회의 분규를 수습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수개월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후 그는 만주·일본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으나 계획이 여의치 않자 귀국 낙향하였다.
고향에서도 그는 8·15 광복을 맞기까지 일경으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구금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155·156면
- 조선일보(1925.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