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그는 1919년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縣北面 明池里)에서 구장으로 있었다. 현북면의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는데 가장 큰 힘을 발휘했던 각 마을의 구장 김익렬(金益烈)·김우근(金禹根)·김진혁(金振赫) 등과 같이 이해 4월 9일의 시위를 위하여 준비해 왔다. 그는 기독교인과 유학자 그리고 각 마을의 구장이 삼위일체가 되어 전개한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에 태극기 제작을 맡아서 면민에게 배부하고, 1,000여 명을 집결시켜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20년 3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鄕土誌(襄陽郡 敎育廳) 74·75·76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24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8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