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거창(居昌)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의 가조면 장기리(加祚面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가북면(加北面)에 사는 김병직(金秉直)과 만나 장기리 장날인 3월 20일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비밀리에 동지규합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20일 정오경, 그는 김병직과 함께 장터에 나아가 5백여명의 장꾼들앞에서 태극기를 높이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장꾼들이 모두 이에 호응하자, 그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장터 일대를 시위행진하였다.
그리고 그는 김병직과 함께 시위대열에서 빠져 나와 가북면에 있던 용산(龍山) 일본군 헌병분견소로 달려갔다. 마침 이곳은 헌병들이 모두 장기리 장터로 출동하여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분견소 안으로 들어가 서류를 모두 찢어버리고, 유리창과 기물을 닥치는대로 파괴한 후, 의자에 앉아 헌병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장기리 장터에서의 시위군중 6명을 체포하여 돌아오던 헌병들을 보자, 그는 김병직과 함께 헌병과 난투극을 벌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무수한 구타를 당하여 반죽음 상태로 다음날 아침 거창 주둔 일본군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결국 그는 이해 5월 31일 부산(釜山)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3·1운동비사(이병헌) 94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8면
- 수형인명부(거창군 가조면장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