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함남 이원(利原) 사람이다.
1919년 3 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던 김가진(金嘉鎭)과 같이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의 함경도 의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19년 7월 1일에는 상해에서 대한적십자회가 조직되자 그 상위원(常委員)으로서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19년 9월 그는 권태용(權泰容) 이을규(李乙奎)와 동반하여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임시정부의 격문, 포고문 등을 전국에 배포하는 한편, 대동단(大同團) 단장 전협(全協)과 상의하고 의친왕 이강공(義親王 李堈公)을 상해로 탈출시켜 임시정부에 협력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는 상해의 김가진으로부터 받아 온 밀서(密書)를 이강공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이에 따라 이강공의 망명계획이 착착 진행되어 11월 8일 서울을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일행은 일경의 경계망을 뚫고 아슬아슬하게 신의주를 통과하여 만주땅까지 갈 수 있었으나 일경 요네야마 경부의 끈질긴 추격으로 이 강공은 안동현 정거장에서 일경에게 연행되어 되돌아 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그는 다시 상해로 도피하여 대동단 총재인 김가진과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1921년 9월에는 동년 11월 11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태평양회의에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청원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게 되자, 그는 김한(金翰)과 함께 자유당의 대표로 이 청원서에 서명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광복시까지 계속 활동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광복 후 서울에 돌아왔으나 1946년 2월에 영면하자 임시정부장(臨時政府葬)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6·23·43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5·36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9·339·34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1면
- 고등경찰요사 245·255·257·25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94·23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2·54·123·124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50·5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01·4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76·466·66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466·14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