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북도 정읍(井邑) 출신이다.
순창(淳昌) 사람인 성암 김상기(省菴 金相璣)·이항선(李恒善)·노원집(盧元執)·채상순(蔡相淳) 등과 함께 하동 화계동에서 1906년 가을에 의거를 일으키고 전 주사인 운정 백낙구(雲亭 白樂龜)를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들은 11월 6일(음 9월 20일) 밤을 기하여 각지의 군사들을 모아 순천읍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이 기약한 일시를 잘못 알고 모이지 않으므로 흩어지려 할 때 적군이 출동하여 의병장과 종사 7명이 적에게 사로잡혔다. 그러나 유병우는 굴하지 않고 지리산(智異山)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1907년에는 이광선(李光善) 의병부대에 편입되어 의병부장으로 총기 수십 정을 휴대하고 의병 100여 명을 지휘하여 적군과 접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후 적의 공격을 받아 전주(全州)에서 체포되었으며, 1909년 8월 25일 광주 지방 재판소에서 15년 유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전주에서 투옥생활 중 죄수 30여 명을 이끌고 탈옥하였다.
그는 다시 부하들을 이끌고 적의 기관을 습격하여 접전하던 중 1909년 12월에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고 기진하여 다시 체포되고 말았다.
재차 구금된 그는 절식하던 끝에 5일 만인 1910년 1월 5일 옥중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3·39면
- 「호남지」 충의 제삼 월담유고
- 판결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397·398·39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9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