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영덕(盈德)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8월 1일 대한제국군마저 해산 당하게 되자 이와 같은 일제의 내정간섭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영해(盈海) 일대의 의병장 신돌석(申乭石)의 의진에 입대하여 의병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8월 9일 동지 수명과 더불어 화승총을 휴대하고 영해군 서면에 사는 권씨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엽전 30관문을 모금하였다. 9월에는 영양 경무 분파소를 습격하였으며, 10월에는 영해 경무 분서를 공격하였다. 12월 27일에 영해군 서면에 사는 홍렬(洪烈)에게서 쌀 1섬을 거두어 군자에 보용하였다.
1908년에 진보군 상리면 신촌에 거주하는 최씨에게 엽전 5관문을 군자금으로 거두었다.
이상과 같은 의병활동이 적에게 탐지되어 체포된 후 8월 2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434면
- 대구지방재판소 판결문 1908.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