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에 참가하여 대한협회(大韓協會)를 발기하고 안동에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에 종사하였다. 안동지방의 보수유림파로부터 반대에 봉착했으나 굴하지 않고 개화교육에 의한 교육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학교의 교재로 우리나라의 주체적 민족사 책인 『대동사(大東史)』를 저술하여 후세의 국사편찬에 크게 기여하였다.
1907년 4월 양기탁(梁基鐸)·안창호(安昌浩)·이동녕(李東寧)·전덕기(全德基)·이회영(李會榮)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경상북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이상재(李商在)·유진태(兪鎭泰) 등과 전국 통일교육기관인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를 창립하고, 같은 해에 박중화(朴重華) 등과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의 설립에도 참가하였다.
1922년 11월 이상재를 대표로 해서 47명의 지도급 인사들이 조선민립대학 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를 발기할 때 주동적 발기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3월 29일 각계 대표 400명이 서울 종로 중앙청년회관에 모여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총회를 개최하고 전국적으로 1천만원의 기금을 모집하여 재단을 구성해서 민립종합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하는 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中央執行委員)으로 선출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2월 자치론을 비판하고 절대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민족협동전선으로서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안동지회(安東支會)를 설립하고 그 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28일 서거하니 이상재에 이어 사회장(社會葬)으로 거행되었다. 저서로서 『동산문고(東山文稿)』, 『대동사(大東史)』, 『대동시사(大東詩史)』 등과 그 밖의 다수의 논문을 남겼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526·81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2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297면
- 조선일보(1928. 5. 4)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405면
- 동아일보(1928.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