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청양(靑陽) 사람이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12년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 중개인으로 있으면서 박상진(朴尙鎭)이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그의 국내 연락책을 담당하여 활동하였다고 한다. 그후 1917년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폈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에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과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였다. 동회는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의 혁명기지를 발판으로 하여 적시에 폭동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16년부터 전국 각처로 조직을 발전시키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 기지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처단 등의 활동을 폈다. 그는 동회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1918년 6월 일경에 붙잡혀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결정조서
- 고등경찰요사 181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2권 439·443·451·453·45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673∼7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