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서울 종로(鍾路) 사람이다.
서울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경술국치를 당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15년에 북경(北京)에서 신채호(申采浩)와 함께 문필가로서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조소앙(趙素昻) 신채호(申采浩) 등과 함께 북경(北京) 항주(杭州) 등지에서 "서광(曙光)"이라는 잡지를 편집, 발간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국내 친척을 통하여 당진(唐津) 예산(禮山) 삽교 청주(淸州) 등지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임정에 납부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33년 1월에는 항주(杭州)에서 송병조(宋秉祚) 김 철(金徹) 조소앙(趙素昻)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재건(再建)하고 그는 박창세(朴昌世) 박경순(朴敬淳) 이중환(李中煥) 이시영(李始榮) 차이석(車利錫) 등과 함께 특별대장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한국독립당은 ① 국가의 독립을 보위하며, 민족의 문화를 발양할 것 ② 계획경제를 확립하여 균등(均等)사회의 행복사회를 건설할 것 ③ 전민족 정치기구를 설립하여 민주공화의 국가체제를 완성할 것 등의 기본 강령(基本綱領)을 내세워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였다. 또한 진광사(震光社)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기관지 진광(震光)을 한글과 한문의 2종으로 발행하여 독립정신을 선양하였다. 그리고 상해의 신사(神社)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추진하였다.
한편 중 일(中日)전쟁이 점점 가열되자 독립전쟁에 대거 참여할 기회가 도래하였다고 판단한 독립투사들은 남경(南京)에서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 한국독립당의 대표들이 모여 3당 통합으로 임시정부를 옹호하자는 데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게 되었다.
1935년 8월 3당은 다시 미국에 있는 대한인 독립당, 동지회, 국민회, 애국부인회, 단합회(團合會) 등 6개 단체와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여, 대일 결전을 앞두고 임시정부의 지원단체의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그는 한국독립당의 대표로서 홍 진 조소앙 조시원 등과 함께 이에 참여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정원의 상임위원(常任委員) 등으로 항일투쟁에 여념이 없던 그는 1936년 2월 항주(杭州)에서 병을 얻어 조국의 광복도 보지 못하고 영면하였으며 동지들의 애도속에 고탕산(古蕩山)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27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6·3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32·57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7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791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441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자료 3권 568 59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