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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0년대 전북 일대에서 독립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0년대 국내의 대표적인 비밀결사인 광복회(光復會)에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풍기광복단과 국권회복단의 인사들이 합류하여 1915년에 결성된 광복회는 친일파 처단, 일제 고관 암살 등을 추진한 의열투쟁 조직이었다.
광복회는 1916년 전남 보성의 서도현(徐道鉉)과 박곡(朴谷)의 양재학(梁在學) 등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제신은 1917년 광복회원인 유장렬(柳璋烈) 등과 함께 전남 보성의 부호인 서인선(徐仁善)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일만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그는 1920년대에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을 위한 독립군 자금모집 활동에 나섰다.
1919년 3ㆍ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내에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집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20년 한우석(韓禹錫:韓焄)은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귀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과 일제 고관 암살을 목적으로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였다. 고제신은 이와 같은 한우석의 활동에 뜻을 같이 하고 한우석, 임성태(林聲泰) 등과 함께 임시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1920년 4월 전북 김제군 만경면 박병한의 집에 침입하여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특파원임을 밝히고 238원을 수합하였다. 이어 같은 달 전북 전주에서 지역 부호를 통해 군자금 4백원을 징수하였다. 1921년 12월에는 전북 부안에서 58원, 1922년 음력 1월에는 전북 김제에서 4백원을 각각 모금하였다. 또 1923년 음력 3월 전북 김제에서 천 2백원을 모금하는 등 수 차례에 걸쳐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고제신은 이같이 활동하던 중 1924년 체포되어 1924년 8월 2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4. 8. 28 전주지방법원)
- 동아일보(1922. 11. 12, 1924. 2. 17)
- 전북신문(1978,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