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이다.
1909년 평양(平壤)의 대성학교(大成學校) 졸업반 재학 중 소위 불온하다는 사상 관계로 동교가 폐교되자 단신으로 중국 망명의 길에 올랐다. 이곳에서 익문대학 영문과(益文大學英文科)를 졸업한 그는 1920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서기로 임명되어 근무하였다.
그는 김홍서(金弘敍)·박은식(朴殷植) 등과 함께 일제의 잔악상을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였으며, 1922년 3월 8일에는 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에 선출되었다. 여기서 입법활동을 계속하는 일방 중국내 각지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에 심혈을 경주한 바 있다.
1922년에는 상해에서 동지들과 함께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를 조직하여 한 중간의 공동항쟁을 모색하였다. 여기에서는 교제과(交際科) 간사로서 활동을 하였다.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의 도인권(都寅權) 등이 제출한 "의정원에서 국민대표회 추진운동을 지원해 달라"는 요지의 인민청원안 의안을 신익희(申翼熙)·차이석(車利錫) 등과 동의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민족운동연감 89 97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37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15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32 133 135 138 139 140 147 149 151 152 153 154 16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5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7권 12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6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