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서울에 머물고 있던 나주 출신 김복현(金福鉉)이 최팔용(崔八鏞) 외 10명이 연명한 ‘선언서’와 격문 100여 장을 가지고 전라남도로 내려왔다. 3월 6일 광주에서 김강(金剛)・송흥진(宋興眞)・서정희(徐廷禧), 그리고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崔丙浚) 등과 나흘 뒤인 3월 10일 광주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김강이 수피아여학교 교사 박애순(朴愛順)에게 선언서 배포와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해 줄 것을 의뢰했다. 3월 9일 만세운동 개시 시간이 다음 날 오후 3시 반이라는 소식이 전달되었고, 박애순은 같은 날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에게 선언서를 배포했다.
3월 10일 오후 3시경 광주 시장에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학생을 비롯하여 수백 명이 모였다. 당시 17살로 수피아여학교를 다니던 김양순은 군중과 함께 시장에서 우편국을 향해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고 이후 1920년 2월 28일 징역 2월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 1919. 4. 30)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5. 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