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고조되었다. 해산된 시위대와 진위대의 무장투쟁이 이어지고 의병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의병들은 일본군과 교전하고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를 처단하는 활동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노성화는 1908년부터 1909년까지 경상남도 진주·합천·단성·의령군 등에서 20~100명을 통솔하여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1909년 7월 23일 진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죄로 징역 7년을 받았고 8월 25일 공소가 취하되었다.
1920년 3월 노성화는 황태익(黃泰益) 등 천도교 경남청년회원 7명과 함께 경상남도 진주에서 경남결사대를 조직하여 진주를 중심으로 경남 서부 일대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들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히 연락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 경상남도 일대를 순시하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삼엄한 경비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했다. 1920년 6월에는 부산축항기념축하회(釜山築港紀念祝賀會)에 참석하는 총독부 정무총감 등 일제 고관에 대한 처단을 시도하였고, 이로 인해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20. 6. 5)
- 폭도(暴徒)에 관(關)한 편책(編冊)(경무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7권 379~3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