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이 봉기하였다. 1907년 봄 문경 출신 이강년(李康年)이 의병을 일으키자, 강병수는 그 휘하에 들어가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이강년 의진은 강원도·경상북도·충청도 일대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908년 12월 전국의 의병진이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 양주에 집결해 13도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자, 호서창의대장(湖西倡義大將)으로 참여하였다.
운강선생창의일록(雲崗先生倡義日錄)에 “강병수의 호는 신암(信庵)이며 문경에서 살았다. 한 편으로 싸우며 한 편으로 퇴각하는 중에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기록되는 등, 1907~1908년 동안 의병장 이강년을 곁에서 보좌했다. 1908년 6월에 이강년이 교전 중 부상당하여 체포된 후에는 고향에서 은둔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1집 306, 7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