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성주(星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2일 벽진면 해평동(碧珍面海平洞)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이기정(李基定) 등이 성주읍 장날을 이용하여 3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온 같은 동리의 여우룡(呂又龍)·여왕연(呂旺淵)으로부터, 일제의 야만적인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분개한 그는 여우룡·여왕연·여호진(呂鎬鎭)·여문회(呂文會)·도무환(都武煥) 등의 동리사람들과 함께 성주읍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고 돌아 온 사람들을 재규합하여, 해평동에서 다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날 오후 11시, 그는 이들과 함께 3백여명의 시위군중을 인솔하여 해평동 월회당(月會堂) 앞 도로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리를 시위행진하였다. 이때 벽진주재소에서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제지하였으나, 밤늦게까지도 독립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그후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4. 30 대구지방법원)
- 판결문(1919. 5. 20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19. 6. 26 고등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70·4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468·14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