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1919년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只沙面 琴坪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1907년 1월 1일에 이미 양한규(梁漢奎)·박재홍(朴在弘)·양문순(梁文淳) 등과 일제헌병대를 습격하였으며 지사면의 군자금 조달책으로 모금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1919년 3월 20일 같은면 방계리(芳磎里)에서 최기현(崔基鉉)과 함께 다수 주민을 규합하여 몇차례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1920년 3월 6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았고 3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어 1년 10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20. 3. 27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07·50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494·149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