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부터 김좌진 (金佐鎭) 장군의 부하로서 무기 운반 (武器運搬) 은닉 (隱匿) 연락 (連絡) 책임 (責任) 을 맡고 2년간 희생적으로 노력하였으며 1930년 장군이 서거한 뒤 장군의 영부인 나혜국 (羅惠國) 여사 (女史) 와 협력하여 장군의 수많은 부하 동지들의 경제 생활면까지 지원하고 장군의 생존 시와 변함없이 무기 운반 (武器運搬) 비장 (秘藏) 등 활약을 하였으며 일경 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악형으로 시난 (時難) 을 극복하다가 7개월 만에 석방되어 중국 (中國) 하남성 (河南省) 으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8.15광복으로 환국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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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신천(信川) 사람으로 만주 길림성 중동선(中東線)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출생하였다.
1928년 김좌진(金佐鎭)장군 휘하에서 활약하고 있던 유창덕(兪昌德)과 결혼하여 남편을 따라 독립군 대열에 가담하여 대일항쟁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1월 신민부 산하 독립투사 40여명이 석두하자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있을 때 하얼빈(哈爾濱) 일본 영사관원의 습격을 받아 유정근(兪政根) 등 12명이 체포되자 다른 동지들과 같이 재빨리 도피하여 각지에 숨겨둔 무기를 운반하였다.
한편 김좌진장군의 부인 나혜국(羅惠國)과 같이 독립군의 식사와 의복 등 보급에 진력하는 한편 외부와의 연락 및 무기 운반에도 참가하였다.
1930년 1월 24일 김좌진장군이 암살당하자 동지들과 함께 복수전을 계획하는 한편 적의 동향을 탐지하였다. 그리고 동년 9월에는 고강산(高崗山)·김수산(金壽山) 등과 함께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1930년 10월 석두하자(石頭河子)에 있던 자택을 일본경찰이 습격하여 남편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증인서(고 김좌진장군의 미망인 나혜국)
- 입증서(安椿生, 李康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