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서림(西林) 사람이다. 1919년 3월 의주(義州)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여 미리 준비하였던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3월 6일과 11일에는 평북 용천(龍川) 남시(南市)에서도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1920년 9월에는 평북 의주군 동암산(東岩山)을 본거지로 하여 김중량(金仲亮)·김유신(金攸信)·박초식(朴初植) 등이 조직한 무장항일단체인 보합단(普合團)에 가담하여 서무를 담당하는 한편 권총과 폭탄을 확보하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단원들이 모금한 군자금은 상해임시정부로 보내기 위하여 친형 김내홍(金迺洪) 자택인 서림면 광봉동(西林面 光峰洞)에 보관하여 두었다. 그러나 군자금 모집중 일경에게 동지들이 체포되자 근거지를 서간도(西間島)로 옮기고 의주에는 연락처를 두게 되었다. 1920년 12월 4일 동단원 김도원(金道源)이 군자금 모집차 방문하였던 서울 운니동(雲泥洞)에서 일경과 교전중 체포되자, 그를 비롯한 단원 22명이 연이어 체포되었다. 그는 결국 1922년 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용정(龍井)에서 목사로 활동하면서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7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82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67·68·69면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0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323·423면
- 기려수필 306면
- 동아일보(1921. 7. 24, 7. 25, 1922. 2. 5,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