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송화(松禾)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신천(信川)·장연(長淵)·송화(松禾) 등지를 중심으로 한 우동선(禹東鮮) 의병진에 가입하여 적과 싸웠다. 1911년에는 일제가 날조한 소위 105인 사건에 연좌되어 체포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1913년에는 사립 양재보통학교(養材普通學校)를 설립하여 교장으로서 교육사업에 투신하여 인재 양성에 힘쓰기도 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송화에서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에게 붙잡혀 금산형무소(金山刑務所)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옥한 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지방 연통제(臨時地方聯通制)의 송화군 참사(參事)로서 송화군감(松禾郡監)과 함께 상해의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 임시정부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1920년 8월에 만주독립단(滿洲獨立團) 파견대장 이명서(李明瑞) 등 9명이 황해도 송화군(松禾郡)에 있는 구월산(九月山)에서 무장독립군대(武裝獨立軍隊)인 구월산대(九月山隊)를 조직하여 친일파 및 일제의 밀정(密偵)을 색출하여 응징하는 등 유격전을 벌였다. 그는 이들 구월산대에게 6개월간이나 군량(軍糧)을 공급하여 간접적으로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배신자의 밀고로 구월산대가 집중 공격을 받아 대다수의 대원들이 부상당하거나 체포당하여 실형을 선고받아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황해도 각 지역을 다니면서 대중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27년 이후에는 암암리에 군자금(軍資金)을 임시정부에 송금하는 한편 황해도 지역의 청년들을 모아 청년운동에 종사하여 이들에게 독립사상을 심어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10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9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40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8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