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437
성명
한자 朴吉陽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21년 이후 경기(京畿) 삼남지방(三南地方)을 순회하면서 군자금을 다수 모집(多數募集)하다 징역 1년 6월 형을 복역하였으며 그 후 사회주의 계열(社會主義系列)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재감중(在監中)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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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기 강화(江華) 사람이다.

1921년 김환일(金還一) 등 4명의 동지와 함께 경기도와 삼남(三南) 지방을 순회하며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동년 10월 31일 일경에 붙잡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한 그는 시대일보(時代日報) 강화지국장을 지내면서 강화청년회(江華靑年會)에 가입·활동하였다.

그는 1925년 4월 18일 박헌영(朴憲永)의 집에서 박헌영·권오설(權五卨)·주세죽(朱世竹)·김 찬(金燦)·홍증식(洪增植)·조봉암(曺奉岩)·김단야(金丹冶) 등 17명의 동지와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를 조직하였다.

그는 회원 양성을 위한 강습소의 설치를 계획하였으며 ≪조선지광(朝鮮之光)≫·≪신흥청년(新興靑年)≫ 등의 잡지를 인수하여 동회의 기관지로 발간코자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동년 11월말 신만청년회(新彎靑年會) 사건으로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조직이 노출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예심이 진행되던 중 일경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병을 얻어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기려수필 356·358면
  • 제적등본
  • 동아일보(1921. 11. 2, 1928. 1. 20)
  • 고등경찰요사 30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709·717·738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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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길양 박의(朴宜) 경기 강화(江華) 조선공산당 제1차 검거 사건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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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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