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평안남도 대동(大同)군 재경리(在京里)면 천동(川東)리에서 태어났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김기홍은 서울 상동교회(尙洞敎會)에 동지들과 함께 모이어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기홍 등은 도끼를 메고 5명씩 연명으로 1회, 2회로 나누어 죽든지 체포될 때까지 상소운동을 하기로 결의하고 1905년 11월 27일 제1차로 이준(李儁)이 상소문을 짓고 최재학(崔在學)이 소두가 되어 대한문(大漢門) 앞에 나아가 바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상소에 연명한 5명을 체포해 가자 김기홍 등은 시민들에게 일제를 규탄하고 국권회복에 궐기할 것을 호소하는 가두연설을 한 다음 시민들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대항하여 투석전을 벌이면서 격렬한 을사조약반대 시위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일제 헌병대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 안창호(安昌浩) 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안남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63면
- 백범일지 162, 1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