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21년 1월 중에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九龍面) 동방리(東芳里)에서 친척 박길화(朴吉和)의 소개로 강철구(姜鐵求)를 만났다. 강철구는 대종교(大倧敎) 교인이자 만주에 소재한 대한군정서에서 활동하고 있던 인사였다. 박낙구는 강철구에게 군자금 800원을 주었으며, 이 돈은 대한군정서 서무부장 김택(金澤)에게 보내졌다.
1922년 음력 8월 박남규는 강철구에게서 독립공채(獨立公債) 3매를 받았다. 2~3일 후 부여군 남면(南面) 마장리(馬場里)에 있는 전영석(田泳奭)의 집에서 강철구 등을 만났다. 여기서 독립운동 자금 100원을 제공하고 독립공채 100원 권 1매를 받았다.
1923년 4월 부여군 내 유지들과 4~5천 원을 갹출하여 양화면(良化面) 입포리(笠浦里)에 봉명의숙(鳳鳴義塾)을 설립하고 학감(學監)을 맡았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9) 제38권 214~217, 248~249, 255~257, 279~278면.
-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