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사람이다.
양주군 자둔면 금오리(紫屯面 金梧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천도교 양주교구장으로 이곳의 3·1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6년부터 천도교 의정부 교구장(議政府 敎區長)으로 있으면서 천도교당내에 야학당을 설치하고 농촌 청소년과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한편 생도들에게 배일사상을 고취하여 왔다.
1919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3월 15일 그의 고향 자둔면 금오리에서 이윤의(李允儀)와 함께 수백 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의정부로 진출하려다가 일경에 저지되었다.
그후에도 1923년 11월 27일 금오청년회(金梧靑年會)와 부인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운동과 성미운동(誠米運動)에 앞장서서 부락갱생(部落更生)·부업장려(副業奬勵) 등 농촌진흥을 위하여 활동하였고, 1936년 8월 14일에는 멸왜기도(滅倭祈禱)와 특별모금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1938년 4월 황해도 신천(信川)에서 열렸던 천도교 전국교구장대표 특별기도회에 참석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혔는데, 일제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4월 25일 신천 경찰서원 2명에게 이끌려서 귀가하였고 고문의 여독으로 1939년 5월 2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運動實錄(李龍洛) 874面
- 每日申報(1938. 5. 1)
- 東亞日報(1938. 5. 1)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35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