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그는 1920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박장호(朴長浩)·백삼규(白三圭)·전덕원(全德元) 등이 1919년 4월 남만주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한 복벽적 항일결사였다. 동단은 도총재부(都總裁部)·총단(總團)의 본부조직과 남만주제일사단(南滿洲第一師團)이란 무장군대를 갖추고 서간도와 국내에 지단도 설치하였는데, 1920년 동단의 김달규(金達奎)·박승엽(朴承燁)·이원보(李元甫) 등은 국내와의 연계투쟁을 위해 평남지단(平南支團)을 결성하고 영원(寧遠)·맹산(孟山)·덕천(德川) 지역으로 지단조직을 확대하였다. 각 지단은 본부의 방침에 따라 독립사상 고취, 군자금 모집, 부일분자 응징, 관공서 파괴, 관공리 처단 등의 무장력에 바탕한 직접투쟁을 행동목표로 하였다. 그는 평남지단 조직책 박승엽의 지도를 받아 정진원(丁進源)·정계록(丁繼綠)·이종현(李宗鉉)·정붕익(鄭鵬翼) 등과 함께 덕천군 내의 유림들을 중심으로 애국세력들을 망라하여 동단의 덕천지단을 조직하였다. 지단장은 이윤실(李潤實), 부단장은 정계록이 선임되었는데 동단은 이후 전단·격문·『독립신문』 배포·군자금 모집활동 등을 폈다. 그는 김승문(金勝文)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담당, 여러 차례에 걸쳐 천여원의 군자금을 모연하여 본부에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맹산독립단(孟山獨立團)의 관공리 처단과 군자금 모집활동에 연루되어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21년 6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21년 10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1. 10. 24 평양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93면
- 동아일보(1921. 10. 28)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99·504·522∼5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