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상북도 영천(永川) 사람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국외로 망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33년 6월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 국내공작원 안병철(安炳喆)의 알선으로 독립투쟁을 결심하고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33년 남경(南京) 조선의열단 간부학교(幹部學校) 제2기생으로 입교하여 6개월간 소정의 군사훈련을 받았고, 1934년 3월에는 중국군관학교(中國軍官學校) 낙양분교(洛陽分校)에 입교하여 훈련을 받았다.
1935년 그는 낙양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남경(南京), 상해(上海) 등지를 왕래하면서 지하공작을 펴다가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자 중국 경찰에 협조하여 중국인으로 간첩활동을 자행하는 자들을 미행하거나 색출하여 체포 숙청케 하는 다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1936년 재남경(在南京) 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으며, 1938년 1월에는 장사대회전(長沙大會戰)에 참전하였다.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는 중국군사위원회 정치부에 배속되어 대적선무공작(對敵宣撫工作), 섬멸작전, 밀정 숙청 등 작전업무에 종사하였는데, 그는 제1구대에 소속되었다.
1943년에는 산서성 부곡(山西省府谷)에서 중대장으로 소속 부대원을 진두 지휘하고 일본군과 격전을 전개하다가 생포되어 북경(北京)으로 압송되었다. 동년 6월 17일에 잔혹한 고문으로 인하여 북경 내일구 동창호동(北京內壹區東昌湖同) 1호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통치사료(한국사료연구소) 508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96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 261·378·385면
- 사상정세시찰보고집(기2) 25·431·43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71면
- 제적등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