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평북 철산(鐵山) 사람이다.
1920년 5월 정원범(鄭元範)·정치민(鄭致敏)과 함께 비밀결사 숭의단(崇義團)을 조직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동단은 국내로 잠입하는 독립운동자의 신변을 보호하고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는 한편 만주의 독립군이 국내로 진공할 때 이에 호응하여 국내의 각 관공서를 습격하고 관공리를 처단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는 동단의 부단장(副團長)직을 맡아 단원의 확보에 힘쓰면서 독립군자금의 모집에 주력하였다.
1920년 11월 8일 그는 네 명의 동지와 함께 철산군에 거주하는 유상겸(劉上 )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 백원을 모금하였다. 또한 선천군(宣川郡)의 부호인 옥문진(玉文珍)으로부터 현금 6백원과 이후 4백원의 군자금을 희사하겠다는 증서를 받았고 옥보찬(玉寶贊)에게서 현금 50원과 백원의 어음 제공을 약속받았다. 이와 같이 모금한 군자금은 중국 상해(上海)의 독립단중앙총부(獨立團中央總部)에 교부하였다.
그는 또한 광복군(光復軍)의 간부로 있으면서 이동일(李東日)·정병호(鄭炳浩)등과 함께 독립사상을 선전하고 항일유인물을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새로이 김상여(金尙汝)·이학필(李學弼)·이동근(李東根) 등을 광복군에 가입시킨 후 독립신문(獨立新聞)의 배포와 군자금 모집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1921년 12월 평남 평원군(平原郡)에 거주하는 이지돈(李枝敦)에게 군자금 5천원의 희사를 요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다. 그러나 이일로 인하여 그는 일경의 추격을 받아 서봉근(徐奉根)·김덕상(金德湘) 등의 동지와 함께 붙잡혔다.
그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1925년 11월 6일 출옥하였다.
그후 그는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2. 1. 14)
- 매일신보(1922. 1. 8)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