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황해도 재령(載寧) 사람이다.
1911년 북간도로 이주하였다가 동년 8월에 다시 돌아와 1913년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1913년 8월에 다시 만주 국자가(局子街)로 건너갔다. 1915년 보명(普明)학교 동창인 나석주(羅錫疇)·최호준(崔晧俊)·김덕영(金德永)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자 계획하였다.
1919년에는 유하현(柳河縣)에서 이 탁(李 )·김동삼(金東三) 등이 조직한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였으며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재류금지처분(在留禁止處分)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920년에 나석주·김덕영·최호준·박정손(朴正孫)·이시태(李蒔泰) 등과 함께 6인 권총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21년 6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8년 5월 감형으로 가출옥한 후 다시 남만주의 빈강성 연수현으로 건너가 계속 활동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5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625·626·6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392·4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219면
- 동아일보(1921.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