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3년 1월에 만주 환인현(桓仁縣)으로 이주하였으며,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22년에는 통의부(統義府) 제4중대원으로 입대하여 섭외를 담당하였다.
1930년 5월에는 독립군 결사대원 50여명과 함께 하얼빈(哈爾濱)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였다 하며 여기서 동지 31명이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1931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입당하였다. 1933년에는 동삼성(東三省)을 뒤로 하고 이청천(李靑天)·오광선(吳光鮮) 등과 함께 산해관(山海關)으로 이동하여 은신하였다.
1934년에는 하얼빈 교외 승덕가(承德街)에서 중국인과 같이 동풍태정미소(東豊泰精米所)를 경영하였으며, 1936년 7월에는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에서 학생 모집차 오광선(吳光鮮)이 파견한 황인식(黃仁植)·김기대(金基大) 두 청년을 유숙하게 하고 여비를 만들어 주는 등 활약하다가 광복후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일보(1930. 5. 4)
- 무장독립운동비사 19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상권 3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