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성주읍의 3·1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성주읍의 만세시위는 이기정(李基定)·성대식(成大湜) 등 군내의 유력한 유림들과 유진성(兪鎭成) 등의 기독교인이 서로 연합하여 추진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상을 초월하여 연합전선을 편 것이다. 이들은 1919년 4월 2일 성주읍의 장날을 기해 봉기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당일 먼저 기독교인들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성주읍 시장을 향하여 만세시위를 시작하자 이에 호응하여 시장 중앙에 모여있던 유림측이 시위를 벌였다. 이에 3천여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이에 가담함으로써 시위는 더욱 고조되었다. 여지연은 석련극(石鍊極)·박하빈(朴夏彬) 등의 동지와 함께 성주면 경산동앞 도로상에서 많은 군중들을 이끌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김교훈(金敎勳) 등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과 기독교계 지사들이 국민대회(國民大會)를 조직하자 그도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동회는 상해 방면의 독립운동단체와도 연락해 가며 삼남(三南) 일대에서 동지의 규합 및 독립운동 자금의 모집에 힘썼다. 또한 1919년 음력 8월 정상진(丁尙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 상해에 가고자 하나 자금이 없어 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자금을 마련하여 줄 것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전북 김제군에 거주하는 송시용(宋始鏞)의 토지목록을 담보하고 초처면장(草處面長)의 도장을 만들어 사용하려다 일경에 붙잡혔다.
이 일로 인하여 그는 1920년 11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공인·공문서위조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성주군의 자양서당(紫陽書堂)에서 청소년교육과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으며, 항상 일경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지조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67·635면
- 판결문(1920. 11. 16 경성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