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출신으로 1907년 9월부터 10월까지 경주, 자인(慈仁) 등지에
서 마중군(馬中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 체포
되어 순국하였다.
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의병부
대들의 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1907년 음력 9월 조근만은 마중군, 탁영조(卓永祚) 등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
고 경주군 후초동(後草洞)에서 군자금 300원을 모집하였고, 동년 음력 10월 무
기를 휴대하고 자인군 섬림(蟾林)의 이장으로부터 군자금 250원을 모집하였다.
그 외 동년 9월 경주군 서면 아화시장(阿火市場)에서 우편부를 처단하고 우편물
을 빼앗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살인죄(强盜殺人罪)로 교수형
에 처해져 상고했으나 1908년 10월 26일 기각당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456~458면
- 日省錄(1908. 11. 10)
- 官報(190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