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을사늑약(乙巳勒約) 이후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1906년에 정용기(鄭鏞基)가 고향 영천(永川)으로 낙향해 의병운동을 시작했다.
나아가 「통유문(通諭文)」, 「격려문(激勵文)」을 통해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의병 참가를 독려했다.
이때 경상북도 영일(迎日) 사람인 정래의는 최세한(崔世翰)·조성목(趙性穆) 등과 함께 흥해지역을 담당했다. 같은 해 3월에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이 조직되자 우익장으로 임명되어 활약했다.
1907년 4월에 산남의진 주도로 의병조직과 역할 및 활동 분야가 정해지고 새로운 의병 세력이 규합되었다. 이때 정래의는 좌익장으로서 의병을 통솔했다. 이후 의병 규모와 세력의 변화에 따라 소모장·참모장 등도 역임했다.
산남의진이 사라진 후인 1926년 3월 의진의 생존자들의 모임인 참동계(叅同契)를 조직했다. 이 조직이 발각되어 경북경찰부 고등과 순사가 체포에 나서자 정순기는 문건을 소각하고 망명했다. 정래의는 정호용(鄭琥鎔) 등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 검사국에 송치됐다. 1927년 10월 18일 56세의 고령에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구류되었으나 10월 27일 기소중지로 불기소 처분받았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27. 10. 16, 10. 17)
- 산남창의지(山南倡義誌)(1946) 하권 21, 36~38, 43~44, 58~61면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351~352, 389~39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獨立運動史資料集(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04~405면